커피와 왕의 시름
김준성 연세대 직업 평론가


 1896년이었다. 서울의 날씨는 여전이 차가웠다. 조정 내부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다른 느낌이 다가오는 중이었다. 왕과 아들은 옷을 챙겨입는다.
조금 후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을 시도한다. 성공적으로 주한 러시아 공관으로의 피신은 완료된다. 피신한 이는 조선의 고종이었다. 그가 을미사변으로 민비가 일본군에 당한 후 신변 안전을 위해 러시아 공관으로 일년 간 피신을 시작한 것이다. 부끄러운 우리나라의 역사의 한 장면이다. 러시아 공관 사람들은 놀라기도 했지만 고종의 상심을 풀어 주기위해 차를 한잔 내온다. 그것은 다름 아닌 커피였다. 커피는 이후 고종이 좋아하는  차가 된다. 커피의 한국 유래는 여러 경로가 회자되기도 하지만 러시아
 공관을 통해 고종에게 제공된 것이 효시라는 이야기도 있다.
커피는 조선 왕의 시름을 달래는데도 효과가 있다는 것을  당시 러시아 사람들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조선은  열강들이 한국에서의 이권(利權) 차지에 혈안이 된 쟁투로 고종으로서는 시름이 무척 컷던 시절이었다. 며칠만 머물 작정으로 주한 러시아 공관에 머물기 시작했던 고종은 그 후 일년 간 이곳에 머문다. 왕궁은 버려둔 채 대신들이 이곳 러시아 공관에 와서 왕을 뵙고 국가 일을 논하기도 한다. 커피는 고종에 의해서 애호(愛好)되고 한국 민족 속으로 퍼저 가는 속도가 는다. 커피를 만드는 기술을 전문적으로 가진 ‘바리스터’ 라는 직업이 당시 한양인 서울엔 존재하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다.

 바리스터 학과가 지금 2010년 한국의 대학에 설치되어있다. 그래서 이젠 바리스터를 전문직업으로 하고 싶은 분들이 진학을 한 후 공부하면 되지만,  당시에는 러시아 공관에서 일하는 이만이 이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기야 조선 당시에는 직업이 농부, 어부, 육의전의 상인 외에 별로 많지 않던 시절이라서 바리스터가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 잡는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수 있었을까. 커피를 전문적으로 만들고 커피 맛을 내는 전문가로서 바리스터는 음식을 요리하기 즐기는 이들이 자기 직업으로 삼고 정진하면 정년 없이 일 할 수 있는 분야라는 점이 좋은 점이기도 하다. 미국 가서 아메리카노 커피를, 이탈리아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커피를 맛보면서 여행을 한다면 나름대로 맛과 향기를 커피로부터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1970년데 커피를 파는 다방에서 음악 DJ의 정감어린 음성으로 소개되는 팝송을 들으면서, 어두침침한 다방에서 마시던 커피를 지금은 맛보기 힘들다. 전방 군부대 근처의 다방 외에는 이런 식의 커피를 파는 곳이 찾기 가 쉽지 않다.

 생산량이 적은 ‘ 리베이카’ 라는 원두, 인스턴트 커피에 자주 등장하는 ‘ 로부스타 ’ 는 원두, 향이 부드럽다.  향기가 나는 ‘ 아라비카’ 원두를 맛보는 것은 생각 만큼 어렵지도  않다. 원두는 커피의 원료이다.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것은 소통이 잘 되는 공간으로 들어가는 일과 통한다. 커피 하나로 글로벌을 제패한 스타벅스는 현장 직원들의 의견을 가장 중요시하고 비즈니스에 바로바로 반영하는 직장이다. 그래서 자기 회사에 대한 자긍심이 무척 강한 직장 중의 하나가 바로 스타벅스다.

 스타 벅스에 입사해서 일하거나, 자기 이름으로 커피 전문점을 창업해서 비즈니스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성공이 그리 만만한 분야도 아님을 알고 덤벼야 한다. 이 직업은 이제 워낙 숫자도 많고 , 진입 장벽도 인테리어 비용을 제대로 준비하면 어렵지 않는데서 취약점이 존재한다. 고종이 마시던 커피맛은 아마도 이국(異國)적이었을 수도 있다. 국가 정책을 세우고 상상하는 데도 커피는 기여했을 수도 있다. 고종이  바리스터의 자문을 받아서 커피를 즐긴 흔적은 역사책 어디에도 없지만 뉴추가 가능하다.

  김준성 연세대 직업 평론가 nnguk@yonsei.ac.kr




목록

▲TOP